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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마라토너가 아닌 사람을 위한 마라톤 책

The Non-Runner's Marathon Trainer

나는 달리기가 싫다. 곧 도착할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기 위해, 또는 약속에 늦어 바삐 움직일 때를 제외하고는 여간 뛰지 않는다.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갈 때도 트레드밀을 이용한 적은 거의 없다. 어쩌다 유산소 운동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트레드밀에 올라가더라고 10분을 못 버티고 내려온다. 너무 지루해서.... 물론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조금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냥... 별로 당기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달리기'란 '교복'같은 존재라고 해야 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는 입지 않는, 또 입을 일도 없는.. 체육시간에 시키니깐 달리고, 가끔 체육 대회 때 이어달리기 선수로 뽑히면 어쩔 수 없이 달리고.... 달리기가 특출 나게 빠른 것도 아닌데.. 100미터 달리기 결과를 보고 빠른 순서대로 한 반에 서너 명씩 뽑다 보니 맨 마지막에 뽑혀 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운동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달리기'는 내 안중에 들어 오지 않았다. 

미국에서 두 번째 여름을 보낼 무렵,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 보니 어디를 가든 달리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창문을 내다보면 꼭 누군가는 달리고 있다. 레깅스에 탱크톱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고 있는 모습이 왠지 당당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보기에 참 좋다....... 잠시, 저 사람처럼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았다.

내가?  과연?....  달릴 수 있을까?

 

나는 목표가 없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 목표를 달성하든 달성하지 못 하든, 내 자신을 움직이게 하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냥 건강을 위해, 시간날 때 종종 달린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면 금세 흐지부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마라톤에 한번 도전해 볼까?

 

정말 갑자기 든 생각이었는데 한번 쑥 들어온 이 생각이 좀처럼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 근처에 가 본 적도 없고 마라톤이 얼마나 뛰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건가? 20년 동안 한 번도 달리지 않았는데 뛰다가 죽는 건 아니겠지?... 별별 생각을 하던 중 왠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을 것 같아 검색을 해 보았다. 그리고 위의 책을 만났다. 달리기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한 마라톤 트레이닝 책. 딱 내가 찾던 책이었다.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참 재미있다. 노던 아이오와 대학교(University of Northern Iowa)의 3학점짜리 마라톤 수업이 그 시작이었다. 학부생들은 3학점을 따기 위해 이 수업에 등록을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전에 한 번도 마라톤에 도전해 본 적이 없었고, 상당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고, 트레이닝이 끝난 후 다같이 26.2마일 풀 코스 마라톤에 참가했으며, 모든 학생들이 완주를 했다. 이 마라톤 수업은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마라톤 수업의 훈련 내용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자는 한 학생의 제안으로 이 책이 탄생하였다. 이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 마라톤을 완주하였고, 이 책의 세번째 저자인 Tanjala가 말하는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은 참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세 아이를 혼자 키우는 워킹맘. 결혼, 출산, 이혼을 겪고 생계를 책임지느라 대학교를 19년만에 졸업한 그녀가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마라톤 수업. 14년 동안 한 번도 뛰지 않았지만, 훈련 과정 중에 허리를 다쳐 일어서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완주를 했다. 


 

이 책에 제시된 트레이닝 프로그램 기간은 총 16주이다. 일주일 네 번 정해진 거리를 달리고, 16주 마지막 날에 마라톤을 완주하게 된다.

Marathon Training Program

하지만 본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앞서 먼저 해야 하는 예비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있다. 나처럼 아주 오랫동안 달려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각자의 상태에 맞게 단계를 선택하여 진행하면 되는데 나는 20년 동안 10분 이상 달려 본 적이 없으므로 Step 1부터 차근차근 따라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Preliminary Training Program

 

예비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첫 단계부터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데  총 11주가 걸린다. 11주와 16주를 더하면 총 27주. 약 7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지금이 2020년 10월이니깐 내년 5월쯤이면, 이 책에서 시키는 대로 충실히 훈련을 한다면, 내년 봄에 나는 마라톤에 도전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년 봄.......

 

내년 봄은 두 가지 이유로 나에게 매우 특별하다.

첫번째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코로나와의 작별. 그리고 내년이면 나는 불혹의 나이를 맞이한다.

불혹(不惑),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에 흔들림이 없다는 나이. 지금도 거친 풍랑을 만난 파도처럼 이리저리 줄기차게 흔들리고 있는데 몇 달이 지난다고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인생을 '나이'라는 숫자로 바라볼 때, 불혹은 특별한 변곡점을 지나는 때인 만큼, 나름 특별한 방법으로 기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제2막의 멋진 인생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

어쩌면 내가 이 타이밍에 이 책을 집어 든 것도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내년 봄에 마라톤에 출전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