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 주제곡들이 있다.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피구왕 통키.... 나이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만화 제목들이다.
어릴 적 내가 매일 아침 반복하던 일이 있었다. 난 어릴 때부터 새벽형 인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에 일찍감치 일어나 제일 먼저 하던 일은 문 앞에 놓여 있는 신문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져온 신문을 마루 바닥에 놓고 그 날의 방송 프로그램이 시간대별로 나와있는 면을 펼쳤다. 그리고 형광펜으로 내가 보고 싶은 만화들을 하이라이트하며 시간대별로 겹치지 않게 일명 '시청 계획'을 세웠다. 각 만화가 시작하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을 잘 고려해야지만 앞 부분을 놓치는 일이 없었기에, 또 만화 사이의 기다림의 공백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기에, 어린 나는 이 과정에 신중을 기했다. 그렇게 시청 계획을 세운 후 학교에 갔고, 하교 후에 간단히 간식을 먹고, 숙제를 하고, 다음 날 준비물을 잘 챙겨 책가방을 싼 뒤, 내가 세운 시청 계획표대로 만화를 보았다. 그렇게 만화를 계획대로 다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만화를 봤지만 그 중 피구왕 통키는 단연 TOP5 안에 드는 어릴 적 나의 FAVORITE이었다. 아마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일 것이다.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맑은 공기 마시며 자~아 신나게 달려보자. 너와 내 가슴 속에 가슴 품은 큰 꿈은 세계 제일의 피구왕.'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주제곡의 가사와 음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왜 갑자기 피구왕 통키 이야기와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어쩌다보니 아이들 앞에서 피구왕 통키 주제곡을 부르게 됐고, 아이들 아빠는 자신의 추억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는지 급기야 피구왕 통키 만화를 찾아 1편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우정과 사랑, 꿈을 향한 열정을 보여 주었던, 그 당시 나에게 지금의 '부부의 세계' 못지 않는 긴장감을 주었던, 피구 열풍을 일으켰던 피구왕 통키. 몇 십년이 지난 후 다시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왜 이렇게 유치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지.........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얘기일 것이다. 피구왕 통키에 열광했던 꼬마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그 꼬마와 비슷한 나이의 아들 둘과 추억의 만화를 다시 보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이들이 이 만화에 어릴 적 나처럼 열광한다. 1편을 보더니 그 뒷 내용이 너무 궁금하다며 다음 편을 기다리고, 피구공을 갖고 싶어하고, 불꽃슛을 날리는 역할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테니스를 치러 갔는데 '불꽃슛'이라며 테니스 공을 손으로 받아 치기까지 할 정도...... 섬세함과 세련됨, 어른이 봐도 충분히 감동적인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갖춘 요즘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아이들이라 성에 안 찰 줄 알았는데 어릴 적 나와 같이 열광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
아이들이 피구왕 통키를 알게 되었으니 그것과 관련된 나의 어릴 적 추억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그 당시 문방구에 불꽃슛이 그려진 배구공을 팔았는데 일반 배구공보다 더 비쌌다는 이야기, 어느 날 공놀이를 실컷 한 뒤 깜박하고 놀이터에 두고 왔는데 다음 날 가보니 누군가 내 배구공에 불꽃 마크를 아주 못생기게 그려놨다는 이야기 등등......공유할 수 있는게 하나 더 생기니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과거의 어린 나와 현재 나의 아이를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구왕 통키'를 다 보면 그 다음엔 '달려라 하니'를 보여줘야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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